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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f노노이치시(野々市市)는 데도리가와 강변에 펼쳐진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과 동쪽은 가나자와시, 남쪽과 서쪽은 하쿠산시와 접하며, 시역(市域)은 동서 4.5km, 남북 6.7km, 면적은 13.56㎢이다.

 노노이치시 북부에 있는 3,500~2,300년 전의 오쿄즈카 유적, 2500~1800년 전의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 오쿄즈카 신덴 고분군 및 남부에 있는 간바야시 고분과 스에마쓰 고분 등의 존재는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했고 개발이 진행된 지역이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7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스에마쓰하이지 절터와 간바야시 부근에서는 조리제(条里制: 토지구획제도)가 시행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한 간바야시신조 유적,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은 취락의 중추부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1세기에는 힘있는 영주였던 하야시씨와 도가시씨가 등장한다. 하야시씨는 남쪽의 간바야시, 나카바야시, 시모바야시 부근을, 도가시씨는 동쪽의 다카하시가와 강의 중류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다. 1221년 조큐의 난이 일어났을 때 조정 편에 섰던 하야시씨는 몰락한 한편, 막부 편에 섰던 도가시씨는 힘을 키워나갔다.

 노노이치는 하쿠산 대로와 호쿠리쿠 도로가 교차하는 교통 요충지로서, 13세기 말경에 이미 시장이 형성되었다. 또한 1335년에는 가가국(加賀國)의 슈고(守護: 무사 관직의 하나)에 오른 도가시 다카이에가 노노이치에 거주하게 되면서, 가가국의 정치경제 중심지로서 발전해갔다. 그러나 도가시씨는 1488년 가가(加賀) 지역의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에서 패한 것을 계기로 쇠퇴해 갔다. 1546년에 오야마고보 절이 가나자와에 창건되자, 가가국의 중심지는 노노이치에서 가나자와로 옮겨갔다.

 에도 시대(1603-1868)의 노노이치는 가나자와성에서 교토로 갈 때, 홋코쿠 가도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역참마을이었다. 또한 가나자와성 근교의 농업지대로서도 발전하였다.

 메이지 시대(1868-1912)에는 1889년에 노노이치무라, 도미오쿠무라, 고무라, 오시노무라, 이 네 마을이 탄생하였다. 1955년에는 마을합병에 의해,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가 되었다. 1970년경부터는 농업지대에서 상업·주택 지대로 서서히 변모해갔다. 지금은 인구가 5만명 이상이며, 2011년 11월 11일에 ‘노노이치시(野々市市)’로서 새롭게 출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