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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29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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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유적
Title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
Areas
남부 29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은 199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3채, 굴립주 건물 4채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장소는 취락 외연부(外緣部)이며, 취락의 중심부는 신조 5초메 부근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혈주거는 8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굴립주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주변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취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은 1991~1996년에 걸쳐, 18,350㎡의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8세기 초반부터 9세기 말의 큰 취락으로, 일반적인 소규모 취락과는 달랐다.
취락 전체는 수혈주거 48동, 굴립주 건물 54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대형 건물 1동과 그에 부속된 건물 10동, 창고 5동도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아, 8세기 후반에는 주거가 수혈주거에서 굴립주 건물로 바뀌는 큰 전환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유적에서 특징적인 것은 관청이나 사원에서 출토되는 경우가 많은, 원형 벼루나 불구(佛具)가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벼루를 통해 목간(木簡) 등에 문자를 적는 인물이 있었다는 점, 또 불구를 통해 당시 이 지역에 불교가 전파되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간바야시·신조 유적의 장대한 굴립주 건물 터에서도 불구가 출토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이 건물은 불교와 관련된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통해 간바야시·신조 유적은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의 일부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이처럼 주변의 유적에서는 볼 수 없는 규모가 큰 건물과 출토유물로 볼 때, 이 일대를 통치했던 수장의 거주지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그러나 9세기 후반 이후에는 급격한 쇠퇴를 보였다. 이는 지배체제의 변화에 따라 취락의 재편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