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ish | 中文(简体) | 中文(繁體) | 한국어
남부 17

스에마쓰 시나노 저택터



Image
Image1
Category
사적 유적
Title
스에마쓰 시나노 저택터
Areas
남부 17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7세기 이전의, 오래 유지된 듯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시대에서는 대규모 관개공사에 의해 무논개발이 가능해져, 8~12세기 무렵의 큰 취락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스에마쓰 고분은 오에하치만 신사(大兄八幡神社) 경내에서 그 분구(墳丘)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고분의 주체 부분은 파괴되었으나, 분구의 규모는 20m 정도로 추측된다. 주변의 간바야시 고분이나 다치 고분 등의 발굴조사로 볼 때, 7세기 초엽부터 중엽에 걸쳐 조성된 고분으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깎여서 없어진 고분을 의미하는 한자 ‘총(塚)’자가 붙은 지명이 많이 있다는 점에서 스에마쓰 지구는 당시의 중심적인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스에마쓰 지구의 경우, 옛날에는 13세기 이후의 사원 터나 저택 터도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데라카쿠치(寺垣内)라 불렸던 황무지에는 19세기 후반까지 도루이(土塁) 터가 남아있었다고 전해진다. 호후쿠지(法福寺) 터는 지금의 스에마쓰 2초메에 있다.
오다치 저택 터는 취락에서 서쪽으로 펼쳐지는 들에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거주했던 오다치씨는 가가(加賀) 지역의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 민중 측의 유력인사였으며, 수도(교토)에도 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