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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14

도가시 저택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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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유적
Title
도가시 저택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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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14

도가시씨는 노노이치시의 다카하시가와 강 중류 지역을 본거지로 삼았다. 1063년에 노노이치에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221년 조큐의 난을 계기로, 가가 지역 무사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335년, 도가시 다카이에는 가가국(加賀國)의 슈고(守護: 무사 관직의 하나)에 임명되었다. 도시이에는 거점을 노노이치에 두고, 도가시 저택에서 정무를 보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1441년에는 도가시 가문의 내부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488년의 가가(加賀)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는 작은할아버지 도가시 요시타카도 민중 측에 가담하고, 다카오 성을 거처로 삼았던 도가시 마사치카는 성을 공격 당해 죽고 만다.
16세기 전반에는 도가시 야스타카가 가가국의 슈고를 맡고 있었으나, 실권은 민중 측인 일향종 신도들이 쥐고 있었다. 1570년에는 도가시 하루사다가 일향종 신도와 싸우다 전사하여, 도가시 가문은 멸망하였다. 도가시 저택은 그 이후에 황폐해져 간 것으로 추정된다.

1958년에 모리타 헤이지는 도가시 저택 터를 측량하여 평면도를 만들었다. 평면도에는 방어를 위해 저택 주위를 에워쌌던 도루이(土塁)의 일부가 그려져 있다.

1994년의 발굴조사에서는 해자의 일부가 확인되었다. 해자 안에서는 생활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도자기와 거울이 출토되었다. 저택의 전체 모습은 불명확하지만, 사방 100~120m의 규모는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저택을 중심으로 노노이치시(野々市市)의 어원이 된 ‘야원(野原: 노하라)에서 열리는 시장(市: 이치)’이 형성되었다. 아마 매우 번성했을 것으로 보인다.